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문단 편집) == 지휘 성향 == ||[youtube(0lqjl7bkDBE)]||[youtube(klSWSH8lB2I)]|| || 베토벤, 교향곡 3번 (rec. 1949) || 멘델스존, 교향곡 4번 (rec. 1954) || ||[youtube(lHzBpNmha7Q)]||[youtube(G6pi3DKVYXA)]|| || 바그너, 지크프리트의 죽음과 장송행진곡 (rec. 1952) || 베르디, 운명희 힘 서곡 (rec. 1945) || 토스카니니의 음악을 들으면 뭔가 낯익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만큼 후대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1960년대 카라얀은 토스카라얀이라고 비꼬아지기도 했다.[* 실제로 카라얀은 젊은 시절에 토스카니니의 리허설을 몰래 듣기 위해 리허설장 오르간 뒤에 숨어서 그의 리허설 장면을 보았는데 카라얀이 말년에 한 인터뷰에서 "토스카니니가 한번은 단원들이 말을 듣지 않아 문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2개의 문이 다 잠겨 있어서 수치심에 얼굴을 가리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토스카니니의 연주는 강인한 리듬과 굵은 골격을 바탕으로 장대한 스케일의 음악이 당당히 울려펴지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오케스트라로 하여금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도록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고, 함께 연주하였던 단원들은 그의 열정에 자기도 모르게 빨려들어 도취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다만 신성불가침의 영억처럼 여겨지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토스카니니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보자는 의견도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후술할 '악보에 충실한 지휘자'라는 의견이 그렇다. 토스카니니는 악보대로 연주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는 오해의 소지가 많은 부분이다. 토스카니니가 오페라에서 악보에서 크게 벗어나 노래를 부르는 성악가들에게 지속적으로 악보대로 부를 것을 요구했다고는 한다.[* 그러나 사실 다카포 양식의 아리아에서는 악보에서 변화를 주어 부르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에 이 말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엔 곤란한 부분이다.] 그러나 토스카니니가 악보에 수정을 가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당대의 다른 지휘자들과 같이 베토벤이나 다른 고전주의 작곡가들의 악보에 가필을 해서 연주했던 지휘자다. 다만 토스카니니는 템포면에서 템포 루바토를 거의 구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점에서 당대의 다른 지휘자들에 비해서는 더 악보에 충실하게 지휘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다만 꼭 그런 것도 아닌 것이, [[볼레로]]의 경우에는 [[모리스 라벨|원작자]]가 요구한 템포를 대놓고 무시한 경우도 있으니 케바케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악보의 가필 문제에 있어서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가필을 한 지휘자에 속한다. 거의 리-오케스트레이션 수준의 가필을 한 것으로 알려진 [[구스타프 말러]]와 비교해봐도 뒤지지 않는다.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을 말러가 4관 편성으로 개작한 악보로 연주한 음반과 토스카니니의 음반을 비교해 보면 자웅을 가리기 힘들 정도다. 곳곳에 수시로 호른을 가필한 것은 물론이고 바이올린의 옥타브를 높이는 등의 조정한 곳도 여러 곳 있다. 현악기나 목관악기의 멜로디 라인을 살짝 바꾼 곳도 있다. 팀파니의 가필도 눈에 띈다. 호른이나 트럼펫은 내추럴 악기의 한계 때문에 가필하는 것이 어느정도 용인되지만 이와 관련없는 다른 악기들도 개의치 않고 뜯어고쳐 연주하고 있다. [[안톤 브루크너]]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들은 거의 지휘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브루크너는 교향곡 4번과 교향곡 7번만, 지휘했고 말러는 단 한 곡도 지휘하지 않았다.] 다만 토스카니니의 활약 당시에 말러는 작곡가로서보다는 지휘자로 더 유명했으며,[* 참고로 토스카니니는 지휘자 말러는 호평한 것과 달리 작곡가 말러는 하찮다고 평가했다.] 브루크너는 독일어권에서만 유명했단 것은 감안해야 한다. 의외로 [[조지 거슈윈]]의 작품[* [[랩소디 인 블루]], 피아노 협주곡 F장조, 파리의 미국인]도 연주한 적이 있는데, 당대 사람들에게는 '재즈답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토스카니니는 흔히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라이벌로 인식되지만[* 실제로 푸르트벵글러는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토스카니니가 19살 연상으로 훨씬 윗 세대의 인물이며, 오히려 당시엔 그리스 출신의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가 푸르트벵글러의 라이벌로 여겨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